'구절구절'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0/01/15 달팽이집
  2. 2009/12/02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3. 2009/11/02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4. 2007/07/08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5)
  5. 2007/04/24 <슬픈예감> (3)
2010/01/15 02:44

(환영이 형이 용산 골목 벽에 써놓은 동시, 달팽이 집)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왔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 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 김규항 씨 블로그 http://gyuhang.net/ 에서 퍼왔습니다.
Posted by 틈새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스물 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 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처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Posted by 틈새
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전남 화순에서 시작하여 구례, 하동을 거쳐 통영, 욕지도, 거제를 돌아나오는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정돈되지 않은 화순과 구례의 자연과 마을 풍경,
햇살에 반짝이는 섬진강의 물결과 모래톱 위를 평화롭게 거니는 철새들,
풍성한 가을 곡식과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린 가을 들판,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한려해상의 비경....
매 순간이 그대로 축복이었다.

하지만 그 가슴 벅찬 순간들의 사이에서, 일순간 모든 감동을 냉동건조시켜버리는 것들이 있었으니,
하동 화계장터에서 안내지와 함께 받은 '4대강 살리기(죽이기)' 홍보 팜플렛과
욕지도로 들어가는 여객선 터미널에 있던 '4대강 살리기(죽이기)' 홍보 전시관이었다.

그래도 그 5박 6일의 축복받은 감동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여행에서 돌아오니
또다시 엄중한 현실이 나에게 경고한다.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중형 선고,
답은 훔쳐봤지만 컨닝은 아니라는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의 어이없는 판결,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결정...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고.

거제의 '청마기념관'에서 보았던
청마 유치환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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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ㅎ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에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Posted by 틈새

광화문을 지나던 길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교보문고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심리학 코너에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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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던 건 2년 전쯤인데
그 때는 책 뒷 부분에 하나님의 어쩌구...하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 때까지 나는 하나님에게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어제는 그 책이 자꾸만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은 책장을 넘기다 말고 주책맞게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사야만 한다는 강력한 믿음.
결국 만 오천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해 버스에서부터 읽으며 왔다.

이 책은 알콜 중독이었던 아버지와 자라 어느 새 자기도 알콜 중독이 되어버렸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찾고 위로하는 과정을 안내하고자 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비록 정도는 다를 지라도
자신의 마음 속에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또래로부터, 선생님이나 교회로부터 또는 사회적,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서
자신의 욕망을 억압 당하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거나
성적,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거나
적절한 보상과 안정을 얻지 못했거나
온전히 의존하지 못하거나 버림 받았던 경험 등이
그 시절에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상처로 남아서
그 때의 상처와 불만을 지닌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자기 안에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발달단계에 따라 갓난아기, 유아기, 학령기, 청소년기를 따라가며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며 위로해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가족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었고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의 잔유물들로 종종 힘들어하는 나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찾아
꼬옥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자신감을 주며,
변치 않을 믿음을 주고 싶다.

서점에서 나를 눈물 짓게 한
내면아이에게 해주는 축복의 말.

매일 읽고 나의 내면아이에게 이 말을 건네주어야겠다.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널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
네가 여기에 있어서 너무 좋다.
난 네가 지낼만한 아주 특별한 곳을 마련해 놓았단다.
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무슨 일이 생겨도, 널 떠나지 않을거야.
네가 필요한 게 무엇이든 다 괜찮아.
네가 갖고 싶어하고 네게 필요한 걸 언제든지 줄게.
네가 여자아이라서 너무 기쁘다.
널 보살펴 주고 싶구나.
난 그럴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널 먹이고,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너와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다.
이 세상에서, 너와 같은 아이는 없다.
넌 독특하단다.
네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도 웃으셨다.









 

Posted by 틈새
2007/04/24 16:18

앞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편안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닻을 올리고, 지금 막 돛이 바람을 타기 시작했으니까, 당분간은 그저 아름다운 파도와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에 젖자. 그 정도는 허용된 일이다.
...
모든 것이 원래 상태대로 돌아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안에서 일어난 이 변화는 세월을 따라 늘어가는 나이에 흡수될 것이다. 아아. 정말, 모르는 채로 있는다고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슬픈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p138,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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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버스 한 켠에 앉아
흔들리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야요이가 언니를 찾아 오소레 산으로 가는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바닐라 유니티가 리메이크 한 'Nuno'의 'Crave'가 흘러나오고
오소레 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야요이는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있었다.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또 다른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찾아낸' 인생,
새롭게 만들어 갈, 불안하고 두렵지만 설레는 미래이다.

한 동안, 마음을 침잠시키는 바나나나 하루키 류의 글을 경계했었다.
하지만 역시, 바나나의 글을 읽으면 그녀가 묘사하는
매 장면과 구절 하나하나 마다에 모든 경계를 놓치고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해야겠다.

바나나의 글을 읽다보면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용기 있게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 순간의 불안과 기대, 설레임까지
모두 내 것이 되어버린다.

그녀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죽음'이라는 모티브는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기회를 만들어주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준다.

자칫 그저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색다른 각도로 보여주며
또 다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녀의 재주가 부러울 따름이다.



2007.4.24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봄날.


 

Posted by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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